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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를 추모합니다!
(기일 : 1.20~1.26)


o 이명박 정권 하 정권과 자본에 의해 자행된 용산학살로 이상림(당시 72세), 양회성(당시 58세), 한대성(당시 54세), 이성수(당시 51세), 윤용현(당시 49세) 열사가 운명했다. 10년이 지났지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모란공원에서 범국민 추모제가 열렸다. 





o 정대영(당시 53세)님은 수원 신동지역 철거민, 용산 망루농성으로 탄압받다 2010년 1월 24일 심장마비로 운명했다.




황인철열사.jpg

o 황인철(당시 53세)님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하여 온 인권변호사로 활동 중 병 악화로 1993년 1월 20일 운명했다.




최신애열사.jpg

o 최신애(당시 28세)님은 범민족대회 참가 중 백혈병 증세 발견, 투병생활 중 1998년 1월 21일 운명했다.




전응재열사.jpg

o 전응재(당시 43세)님은 인천지역 택시노조 투쟁 앞장, 택시노동자 생존권 쟁취를 위해 2002년 조직부장, 63일 동안 파업, 월급제 쟁취, 연월차 유급화, 2005년 회사는 ‘택시월급제 사수를 위한 비상모임’ 활동가 3명 해고, 2006년 임금삭감안을 반영시킨 임금협약 체결, “임금삭감은 절대 안 된다”, “해고를 막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2007년 1월 23일 분신 운명했다.




김성윤열사.jpg

o 김성윤(당시 62세)님은 상호운수노동조합활동, 1994년 1월 24일 ‘김영삼 대통령께 드리는 글’ 작성 후 자결했다.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주거비도 안 되는 돈으로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자녀 교육은 무엇으로 시킵니까? 사흘 굶으면 남의 집 담 넘어가지 않는 놈 없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살려다 보니 승차거부, 합승행위 등 온갖 불명예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린 친구들끼리도 아버지가 택시기사라고 말 못 하는 세상, 이제는 허탈뿐입니다. 꼭 택시요금을 현실화시켜 주십시오.”(유서 일부)




정운갑열사.jpg

o 정운갑(당시 29세)님은 삼미특수강 노동자로 노조집행부 활동 중 병이 악회되어 1993년 1월 25일 운명했다.




임영덕열사.jpg

o 임영덕(당시 41세)님은 공무원노조 진해시 지부장 역임, 헌신적 투쟁을 벌이다 2003년 1월 25일 병으로 운명했다.




이오순열사.jpg

o 이오순(당시 69세)님은 1985년 막내아들 송광영이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외치며 분신 사망 후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헌신하다 1994년 1월 26일 운명했다.




김양무열사.jpg

o 김양무(당시 50세)님은 범민련 남측본부 상임부의장 등 평생을 통일운동에0 헌신하다 2000년 1월 26일 병으로 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