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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균열사 장례를 마치며

- 노동자의 목숨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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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참혹하게 목숨을 빼앗긴 김용균 열사 장례가 62일만에 치러졌다. 열사 부모의 애끓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조차 힘든 나날이었다. 열사는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묘소 옆에 안장됐다.  


지난 두 달 동안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집회, 행진, 농성, 삼보일배, 단식, 추모제 등을 쉼 없이 진행했다. 열사의 시신을 태안에서 서울로 옮기면서 처절한 장례투쟁이 전개됐다. 민주노총의 역할을 해내는 유가족에게 죄송스럽고 고마웠다. 


공공운수노조가 ‘청년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의 중심에서 투쟁하면서 정부로부터 일정 정도의 합의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은 열사 부모님의 완강한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님의 투쟁이 있었기에 그의 정신을 올곧게 이어올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번 투쟁에서 노동현장에서 죽지 않고 일할 권리, 비정규직 철폐와 정규직화를 외쳐 온 민주노총이 투쟁의 중심에 서지 못했다. 열사가 들고 있던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과 만납시다!”라는 피켓은 그의 마지막 유언과 영정이 되고 말았다. 


열사의 어머니 김미숙님은 대책위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통령을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소속 조합원이 국가 공기업에서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로 차별과 고통 속에서 노동하다 처참하게 목숨을 빼앗겼는데 민주노총은 대통령을 만나고 경사노위 참여에만 몰두하느라 열사투쟁의 책임 있는 주체로 나서지 못했다.  


투쟁의 형식과 내용도 문제였다.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가 아니라 ‘고 김용균노동열사 민주노총대책위’가 되어야 했다. 장례 역시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이 아니라 ‘고 김용균 열사 전국 노동자장(또는 민주노총장)’이 되어야 했다.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의 착취와 수탈 과정에서 노동자가 죽었는데 무슨 시민대책위인가? 자본가들도 공장을 나서면 시민이 되는 사회다. 구조적으로는 철저한 계급사회이지만 희석화시켜 몰계급 사회로 만들어 버린다.  


독일,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 같은 나라가 한국보다 비정규직 비율이 낮지만 지속적으로 단시간 노동자 등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다. 비정규직 비율과 산재사망률이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10만명당 산재사망수는 영국이 0.4명인데 반해 한국은 10.1명이다. 25배에 달한다. 독일은 산재사망률 제로에 도전하고 있다. 


본질보다는 비정규직과 산업재해라는 현상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 네덜란드의 경우 단시간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40%에 육박하지만 정규직 노동자와 임금차별이 거의 없다.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처한 특징은 정규직과의 차별과 중간착취 그리고 위험률이 높은 작업환경이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유독 한국의 자본주의가 매우 야만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김용균 열사가 발전소에서 목숨을 빼앗긴 것처럼 전국 곳곳의 노동현장에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는 이유는 사람의 목숨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자본의 탐욕 때문이다. 공기업조차도 IMF 이후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민영화, 외주화를 추진하면서 노동자들은 점점 더 위험한 노동환경에 빠져들고 있다. 


김용균 열사 장례투쟁에서 합의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투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양자간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합의는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노동자들이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근본 원인은 노동자들의 목숨보다 이윤이 더 중요한 가치와 이념의 자본주의다. 이를 극복한 대안은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 진정한 공기업화를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이다. 


2019.2.10.일


배제된 사람들과 함께 <평등노동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