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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2020.11.13 01:03

전태일 열사 50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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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 50주기에

 

오늘(1113)은 전태일 열사 50주기다. 19701113일 오후 130분경 평화시장, 열사는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열고 근로기준법을 지켜라!”외치며 분신했다. 병원으로 이송된 뒤 밤 10시경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치며 운명했다. 그의 나이 22살이었다.

 

17살이던 1965년 평화시장에 견습공으로 취직한 후 재단보조, 재단사로 일했다. 1970108일 재단사 단체 대표들이 ()평화시장을 찾아가 다락방 철폐, 노조결성 등 8개항을 요구했고, 1024일 근로조건 개선 시위를 계획했으나 실패한 뒤 1113일 분신하기에 이르렀다.

 

열사는 분신하기 전 몇 달간 건설공사장에서 일하면서 평화시장 형제자매들 곁으로 돌아가기 위한 완전한 결단을 내린다. 깊은 고뇌 속에서 나온 결단으로부터 발현된 전태일 정신은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 준 인간애를 넘어, 근로기준법 준수를 넘어, 노동해방을 향해 온 몸을 바친 불꽃 정신이었다.

 

전태일 열사 분신으로 박정희 개발독재에 착취당하며 짓눌려 있던 노동자민중들의 가슴 속에 해방의 불씨가 싹트기 시작했다. 1970년대 어용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민주노조의 몸부림과 투쟁이 일어났으며, 19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억압의 쇠사슬을 끊고 노동자들이 대투쟁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전태일 열사 정신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열사의 분신으로부터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권력과 자본은 물론이고 관제어용노조로부터도 탄압받으며 성장한 민주노조의 씨앗이 자라 명실상부한 제1노총인 100만 민주노총으로 성장했다. 전체 노동자 2500만 명 중 조직화는 4%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토록 외쳤던 계급적 산별노조건설과 변혁적 노동자정치세력화는 더디기만 하다.

 

그래서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자본은 노동운동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며 노동착취를 통해 이윤을 극대화 하고 있다. 세계화와 4차 산업 혁명 등을 통해 자신을 변신하며 자본주의 체제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고 있는 비정규직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 조직된 노동자들은 자본의 분할지배전략 속에 포위되어 있다. 전태일 열사 정신으로 다시 결단하고 새롭게 노동운동을 조직해 나가야 한다.

 

2020.11.13.

 

배제된 사람들과 함께 <평등노동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