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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금융수탈제체 종식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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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고향에서 지역 청소년 공부방이라 할 수 있는 공간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며 사회운동을 시작한 지 40년이 흘렀다. 1979년부터는 아동복지시설(고아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국가주의를 교육받았고, 고등학교 때부터 군사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엄혹했던 박정희 유신 독재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했다. 1970년대 말 유신 말기에 벌어진 투쟁이나 사건들에 대해서는 통제되고 왜곡된 기사로 진실에 접근하지 못했다.


그러다 10.26, 12.12 이후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외치며 연일 계속된 가두시위에 참여하면서 민주화운동에 동참하게 됐다. 이 시기의 기억과 경험이 나의 향후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해 5월 15일 10만명이 모였던 서울역 광장에서 지도부는 군대가 개입할 명분을 준다는 이유로 회군(해산)을 결정한다. 그러나 전두환 군사쿠데타 세력은 5.17 수도권 계엄령과 대학 내 탱크가 진주하는 휴교령, 곧이어 5.18 광주학살을 자행한다.


3개월의 휴교령으로 귀향했다가 개학한 대학은 정보요원들로 가득 찬 공안통치의 현장이었다, 이때부터 일부는 노동현장으로 떠났다. 가끔 대학 건물에 매달려 독재 타도 유인물을 뿌리고 연행돼 가는 학우들이 있었지만 감히 동참하지 못했다.


당시는 대학생 수도 적었고 경제도 호황이었기 때문에 취업은 수월했다. 취업 대신 대학원을 진학하고 1983년 연구기관에 들어가면서 연구자의 길을 택했다. 1980년 초부터 시작된 청계피복노동조합 투쟁, 1985년 구로동맹파업이나 대우자동차 파업투쟁은 나와 무관하게 지나치는 뉴스였다.


그러나 1987년 박종철 열사 물고문 사건,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 노태우 6.29 선언에 이은 7·8·9월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나면서 전두환 정권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고 연구원에서 살아가던 내게도 변화가 왔다.


1987년 12월 4일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두 번째로 노조를 만들면서 노동운동의 길에 들어섰다. 당시만 해도 노동조건 개선이나 권위주의 타파를 위한 직장 민주화 수준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확산된 민주노조운동의 바람은 나를 사업장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았다. 점차 연구기관노조협의회를 넘어 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으로, 사무전문직노조 연합체인 업종회의로, 제조업 노조 중심이었던 전노협과 대공장 노조 등과 연대한 전국노조대표자회의(전노대)를 거쳐 1995년 11월 민주노총 건설까지 이르렀다.


민주노총건설 과정에서 조직의 집행위원장을 맡았고 건설 후에는 2009년 초 사퇴할 때까지 5차례나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장에서는 후퇴하는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하기 위해 민주노총 위원장 출마, 직선제 쟁취 투쟁, 투쟁사업장 연대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금융수탈체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알바를 비롯한 비정규불안정노동자 조직화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2012년 <좌파노동자회>를 창립하는 데 함께 했다. 작년에 ‘배제된 사람들과 함께’ <평등노동자회>로 이름을 바꿨다. 운동적으로 어려운 시기이지만 앞으로도 꾸준하게 활동을 전개해 갈 것이다.



2018.10


평등노동자회 대표 허 영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