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본문시작

페이스북 more

열린게시판
2018.10.17 16:08

고 김주익

조회 수 39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첨부 수정 삭제

rlawndlr.jpg


유서...


오랜만에 맑고 구름 없는 밤이구나. 내일 모레가 추석이라고 달은 벌써 만월이 다 되어 가는데, 내가 85호기 크레인 위로 올라온 지 벌써 90여일, 조합원 동지들의 전면파업이 50일이 되었건만 회사는 교섭 한번 하지 않고 있다. 아예 이번 기회에 노동조합을 말살하고 노동조합에 협조적인 조합원의 씨를 말리려고 작심을 한 모양이다.

노동자가 한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들과 썩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다. 1년 당기 순이익의 1.5배, 2.5배를 주주들에게 배상하는 경영진들, 그러면서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어렵다고 임금동결을 강요하는 경영진들. 그토록 어렵다는 회사의 회장은 얼마인지도 알 수 없는 거액의 연봉에다 50억 원 정도의 배상금까지 챙겨가고 또 1년에 3천5백억 원의 부채까지 갚는다고 한다.

이러한 회사에서 강요하는 임금동결을 어느 노동조합, 어느 조합원이 받아들이겠는가?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만 21년, 그런데 한 달 기본급 105만원, 그중 세금 등을 공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8십 몇 만원 근속년수가 많아질수록 생활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 할 텐데 햇수가 더할수록 더욱더 쪼들리고 앞날이 막막한데 이놈의 보수언론들은 입만 열면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니 노동자는 다 굶어죽어야 한단 말인가. 이번 투쟁에서 우리가 패배한다면 어차피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 한사람 죽어서 많은 동지들을 살릴 수가 있다면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경영진들은 지금 자신들이 빼어든 칼에 묻힐 피를 원하는 것 같다. 그래 당신들이 나의 목숨을 원한다면 기꺼이 제물로 바치겠다. 이 투쟁은 반드시 승리해야만 한다. 잘못은 자신들이 저질러놓고 적반하장으로 우리들에게 손해배상 가압류에 고소고발에 구속에 해고까지 노동조합을 식물노조로 노동자를 식물인간으로 만들려는 노무정책을 이 투쟁을 통해서 바꿔내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승리할 때까지 이번 투쟁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부족한 나를 믿고 함께 해준 모든 동지들에게 고맙고 또 미안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 것, 40년의 인생이었지만 남들보다 조금 빨리 가는 것뿐. 결코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무엇 하나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헤어지게 되어서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아이들에게 힐리스인지 뭔지를 집에 가면 사주겠다고 크레인에 올라온 지 며칠 안 되어서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조차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준엽아. 혜민아. 준하야.
아빠가 마지막으로 불러보고 적어보는 이름이구나. 부디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 바란다.
그리고 여보.
결혼한 지 십 년이 넘어서야 불러보는 처음이자 마지막 호칭이 되었네. 그동안 시킨 고생이 모자라서 더 큰 고생을 남기고 가게 되어서 미안해. 하지만 당신은 강한 데가 있는 사람이라서 잘 해주리라 믿어. 그래서 조금은 편안히 갈 수 있을 것 같애.
이제 저 높은 곳에 올라가면 먼저 가신 부모님과 막내 누나를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럼 모두 안녕.


2003년 9월 9일
김주익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4 열린게시판 <새책>『네트워크의 군주 ― 브뤼노 라투르와 객체지향 철학』(그레이엄 하먼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19.07.29 1056
43 열린게시판 7월8일 개강 시작! 페미니즘, 철학, 역사, 예술 강좌가 열립니다.(다중지성의 정원) 다중지성의정원 2019.07.07 1599
42 열린게시판 <새책>『열정과 망상 ― 학계의 감정문화』(샤를로테 블로크 지음, 김미덕 옮김) 갈무리 2019.07.07 548
41 열린게시판 7월2일 개강 시작! 철학, 미학, 예술 강좌를 소개합니다.(다중지성의 정원) 다중지성의정원 2019.06.20 203
40 열린게시판 7월1일, 다중지성의 정원 강좌 개강! 다중지성의정원 2019.06.15 1050
39 열린게시판 <새책>『전환기의 한국사회, 성장과 정체성의 정치를 넘어』(맑스코뮤날레 지음) 갈무리 2019.05.25 1266
38 열린게시판 <새책> 『대피소의 문학 ― 구조 요청의 동역학』 출간! (김대성 지음) 갈무리 2019.04.21 928
37 열린게시판 [기본소득제주강연회]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file 평등노동자회 2019.04.15 203
36 열린게시판 610만세운동의 지도자 권오설 89주기 추도식 및 기념강연 file 평등노동자회 2019.04.15 279
35 열린게시판 다중지성의 정원 4월 10일 개강 강좌ㅡ 예술사회학, 철학, 영화, 서예, 교양 다중지성의정원 2019.04.06 1836
34 열린게시판 <새책> 『역사의 시작 ― 가치 투쟁과 전 지구적 자본』 출간! (맛시모 데 안젤리스 지음, 권범철 옮김) 갈무리 2019.03.23 825
33 열린게시판 2019년 2월 27일 11시 제주특별 자치도청 앞 영리병원 반대! 원희룡퇴진 집회 참석 제주회원 활동입니다.^^ file 평등노동자회 2019.02.27 318
32 열린게시판 경기화성학교 청소년상담사 집단해고 철회를 지지하는 인증샷 file 평등노동자회 2019.02.27 257
31 열린게시판 경기화성학교 청소년상담사 해고철회투쟁 인증샷 file 평등노동자회 2019.02.26 213
30 열린게시판 <새책> 『깊이 읽는 베르그송』 출간!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 지음, 류종렬 옮김) 갈무리 2019.01.10 619
29 열린게시판 1월 4일 개강! 다중지성의 정원 철학 강좌 : 장자, 하이데거, 후설, 투명기계 다중지성의정원 2018.12.17 838
28 열린게시판 故 정찬훈 동지 2주기 추모제 file 평등노동자회 2018.12.17 235
27 열린게시판 이수갑선생 5주기 추모제_창의성을 발휘해, 현장에서 활동하라! file 평등노동자회 2018.12.13 223
26 열린게시판 다중지성의 정원이 1월 2일 개강합니다! 다중지성의정원 2018.12.12 873
25 열린게시판 초대! 맑스 탄생 200주년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출간 기념 역자 특강 (12/15 토 오후 3시) 갈무리 2018.12.08 1671
Board Pagination Prev 1 2 ... 3 Nex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