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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 아니라 틀을 깨야 한다!

 

 

민주노총 하반기 큰 투쟁인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가 있었다. “선을 넘자!”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결론은 선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연례적인 행사에 그쳤다.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참석자들 역시 자신감을 회복하거나 갑갑한 마음을 해소하지 못했다. 3만 조합원이 서울 도심에 모였다. 유신독재로 회귀하는 박근혜 정권에 저항한다는 것이었는데 현 시기 정세에 대한 메시지가 없었다. 포스터에 분명하게 표현한 물리적 선도 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정세에 맞서는 집행부의 전략이나 전술을 공유하지 못했다. 그냥 정권 5년 임기 첫해에 보여준 분노뿐이다. 그러다 5년차가 되면 대통령선거에 대응하는 반복이 계속되고 있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깃발을 올린 민주노조운동이 시계추처럼 오가는 보수정치판에 기대어 정권교체에 일희일비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10년간 민주노총 조합원을 2000명이나 구속시킨 정권이 이명박근혜 정권보다 더 민주적이라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 집행부나 조합원 모두 선을 넘을 수 있다는 기대나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오히려 종교인들이 정치적인 선을 넘어서고 있다. 지금 노동운동은 단순히 선의 문제가 아니다. IMF외환위기 이전의 투쟁대상이었던 재벌이나 권위주의 군사독재정권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국가조차 하위파트너로 만들어 자본의 행정기구로 전락시킨 지 오래다. 단순히 선을 넘음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매우 구조적인 착취와 수탈기구다.

 

 

따라서 설령 선을 넘어선다 하더라도 특별히 국면이 바뀌는 건 없다. 자신을 벗어나 바깥에서 궁극적 진리를 찾을 수 없다. 주변을 떠나 타지나 심지어 우주로 나아가더라도 우주의 중심인 자신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선도 넘을 수 없다. 결국 선, , 공간이라는 입체적 구조를 넘어서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갇혀 있는 구조적 을 깨야 한다. 틀 속에 갇힌 상태에서 넘는 선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이다.

 

 

선을 넘어서려면 대치국면이 분명해야 한다. 좌파운동을 제안하고 실천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 운동 역시 선언만으로 전선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에 깊숙하게 편입되어 체제내화 된 상태에서는 선을 넘을 수 없다. 상대는 탄압과 회유라는 양면전략을 구사한다. 탄압을 위해서는 당연히 노동내부를 분할 지배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조직된 노동운동세력을 고립화시킨다. 민주노조운동은 지금 자본의 분할지배 전략에 말려 있다. 스스로 고립화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이번 전국노동자대회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선을 넘고 틀을 깨는 계기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정세인식에서부터 전략전술에 이르기까지 은커녕 도 넘을 수 없었다. 지금은 박근혜정권의 유신회귀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의 수탈과 착취가 강화되는 정세다. 따라서 정권이 아니라 자본주의체제에 맞선 노동운동의 전략과 전술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립을 탈피하고 운동을 확장시켜야 한다. 말하자면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이 다수의 조직되지 못한 비정규불안정노동자들과 연대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본에 의해 대립과 갈등적 위치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조중동 같은 자본언론에 의해 적대적 관계로 왜곡되기도 하는 실정이다.

 

 

이번 전국노동자대회 주요 요구는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 민영화-연금개악 저지! 비정규직 철폐! 민주주의 파괴중단! 노동탄압 분쇄!’. 당연히 조직노동자들의 요구다. 그것도 대기업 비정규직 중심인 민주노조운동의 반복되는 요구다. 지켜야 할 문제다. 지키는 것을 쟁취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지키기 위해서는 자본과의 관계에서 최소한 힘의 관계가 대등해야 한다. 그러나 수세적인 국면에서 지키는 것은 어렵다. 조직적 퇴각도 어느 정도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 문제는 고립된 민주노조운동의 힘을 어떻게 복원하고 강화할 것인가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500만 알바노동자와 400만 실업노동자 포함 약 1000만 비정규직불안정노동자의 처지를 비교해 보자. 이들은 기존 조직노동자들이 국제기준과 헌법이 보장하는 온전한 노동3권인 노동기본권 쟁취를 요구한 반면 최소한의 생존권적 요구인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고 있다. 43년 전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며 외친 구호다. 가장 밑바닥에서 열사정신을 요구하고 있다. 알바노동자들의 4분의 34대 보험조차 가입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연금개악저지는 자신들과는 무관한 요구일 뿐이다. 하물며 4대 보험료를 떼는 것보다 그것조차 생계비에 보태야 하는 절박함으로 살아간다.

 

 

알바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철폐가 아니라 시급 4860원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절규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근로기준법을 지켜준다면 고마울 따름이다. 자본이 정규직을 철폐하는 마당에, 자본이 정규직노동운동을 붕괴시키는 마당에 알바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찬밥더운밥을 가릴 수 겨를이 없다. ‘민주주의 파괴중단역시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것이 정치적인 문제인 한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겐 우선순위가 아니다. 고용불안, 최저임금, 금융부채, 주거비, 등록금, 빈곤, 질병 등 경제적 민주주의가 파탄 난 상황에서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파괴한 수구보수세력이라도 기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말로만 하는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는 절박함이다.

 

 

노동탄압 분쇄역시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 근처에도 못가는 알바·실업노동자들에겐 주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빼앗길 것조차 없는 1000만 노동자들에겐 강 건너 불구경일 뿐이다. 그것이 특정 정권의 문제가 아닌 이상 더더욱 그렇다. 노동인권대통령에 참여정부라던 시절인 2004년 민주노총의 장기투쟁사업장은 90여개였고, 10년이 지난 2013년 현재 이명박근혜 정권에서는 70여개로 줄어들었다. 그 숫자가 정권의 폭력성을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자본가 정권에서 그 강도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민주노총은 2001년에 김대중 정권 퇴진을, 2006년에 노무현 정권 퇴진을 내걸었다. 지금 박근혜 정권 규탄이나 결사항전 같은 정치적 구호는 한풀이 같은 소리다. 정확한 정세인식과 비정규불안정노동자 조직화 없이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붕괴한 87체제 민주노조운동의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흔들릴 것이 아니라 을 깨고 새로운 (좌파)노동운동으로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 스스로 자본주의체제(진영)로부터 벗어나 연대하고 조직해야 한다. 노동계급의 불평등과 분할지배는 자본가의 전략이지만 이를 막지 못한 것은 노동계급 스스로의 책임이다.

 

 

(2013.12, <좌파노동자> 2, 좌파노동자회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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